KBS 제48기 전속성우 여자 1차 시험문제

 

 

 

(조금 취한 듯한) 아저씨 배 탔었어요? 누가 그러데요.

망망대해 어느 어선에서 본 거 같기도 안 본 거 같기도 한데 본 거 같은 기분이 더 많이 든다고.

(대꾸 없다) 전혀 아닌 말은 아닌가 보네요. 근데 아저씨, 조금도 궁금했던 적 없어요?

뭐 하는 여자길래 날이면 날마다 취해 와 잔다고 테이블 빌려 가는지… 후후. 저 여기 사람 아니에요.

뭐 아주 멀리 사는 사람도 아니지만… 마지막, 마지막이에요. 날이 밝으면 떠날 거예요.

그래서 아저씨한테 사과 겸 (피식) 어쨌든 매일 취해 테이블 빌려 나갔으니까. 조금 얘기도 하고 싶고…

오해는 말아요. 신세 한탄 그런 거 아니니까… 실은… 취한 적 한 번도 없어요. 취한 척한 거지.

술은 옷에 발랐고. 왜 그런 짓을 했나… 모르겠어요. 그냥, 내가 내가 아니고 싶었나 보죠. 이제 갈 거예요.

내가 나인 곳으로.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. 문득 지겨워 떠난 나름의 여행이었고, 이젠 기운을 좀 차렸어요.

(상대를 짠하게 본다) 갈게요. (두어 걸음 걷고는) 근데 아저씨, 아저씨도 부디 도망쳐 있는 건 아니길 바랄게요.

그럼에도 만약 그렇다면… 너무 오래 도망자가 되진 말아요.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나도 결국 나니까.

그런 나를 내가 측은히 여기지 않고 밀쳐두면 너무 가엽잖아요. (애써 밝게) 나, 진짜 가요! (나가는)

 

 

 

▶ 상황설명(참고) : 행복전도사로 TV를 누비던 주인공이 명성의 허망함을 충격적으로 겪고 어촌 한구석에 식당을 차리고

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지내다가 그의 식당에 단골 방문객이 찾아온 장면

 

 

 

 

 

(10초 간격을 두고 연기해 주세요)

 

 

 

그 마을은 아지냐가라고 불린다. 포르투갈의 여명기 이래 늘 그곳에 있다.

포르투갈이 13세기에 주권을 양도받았으니 유서가 깊은 마을이다. 하지만 찬란한 이력의 흔적은

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. 오직 마을 옆을 지나는 강만 그대로다. 그 강은 수없이 둑을 넘어 범람했지만

내가 기억하는 한 강줄기의 방향이 달라진 적은 없다.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, 아이는 이미 이 마을에

넝쿨손을 내밀고 뿌리를 내렸다. 그때 나는 여린 씨앗 같은 존재였지만 작고 떨리는 두 발로 마을의 진흙땅에

발을 내디딜 시간을 누렸다. 그렇게 이 땅의 고유한 특성, 거대한 공기의 대양이 빚어내는 풍경, 때론 말라붙고

때론 젖어 있는 진흙을 아무도 지울 수 없게 고스란히 받아들였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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